컴퓨터 엔지니어링 과정 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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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엔지니어링 과정 후 취업

등록일 : 2014.11.07조회 : 1,589댓글 : 0

Red River College 컴퓨터 엔지니어링 과정 후 취업


 

이번에는 캐나다 유학을 마친 후 취업을 했던 분들과는 유사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국제학생으로 유학을 마치고 취업을 하고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그동안 저희가 소개한 취업 후기의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번에 소개드리는 분은 영주권을 취득 한 후 다소 다른 분들보다 많은 나이에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게 된 케이스 입니다. 유학 후 이민을 소개하는 취지와는 조금 다르지만 40대 이상의 고객들께서 가장 궁금해하고 동시에 두려워하시는 취업이 이렇게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구나…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이기에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드리고 싶었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한국에서

1990년에 ROTC로 군대를 전역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군 복무기간 중에 컴퓨터를 배우고 전산실장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배움 덕분에 군을 제대한 후 국내 대기업 전산직에 취업을 해서 4년,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해서 1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100여명의 직원을 둔 외국계 선박회사에서 7~8년 정도를 전산직에서 일을 하고 나니 어느덧 40대가 되어있더군요.
그게 99년~2000년 무렵이었는데 40대의 직장인은 나도 모르는 사이 “고액연봉을 받는 퇴출대상자”를 의미하는 말이 되어있었습니다.
캐나다라고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흔히 말하는 라인을 잘 타야만 오래 버틸수 있는 환경이 만연해 있었는데, 후배들이 상사로 진급을 하고 있는데도 도저히 그 줄서기라는것을 못하겠더군요.
그때 캐나다 이민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제 아내도 저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를 해 주어서 독립이민 (지금은 전문인력이민 이라고 하는)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영주권 신청을 하고 생각보다 빨리 비자가 나와주어서 저는 가족들을 데리고 2002년 11월에 캐나다로 랜딩을 하게 되었답니다.
당시 저의 기도는 “직장만 갖게 해 주세요.” 였습니다.

초기 정착 시절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 제게는 명예퇴직금과 전세보증금을 합해서 4500백 만원 정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영주권을 받아들고 토론토와 캘거리 그리고 위니펙을 놓고 어디로 정착을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위니펙은 우리에게 당시만해도 생소한 지명이었는데, 제가 아는 지인께서 저보다 1년 먼저 위니펙으로 이민을 가셨고, 그 분께서 이곳이 살아보니 물가도 저렴한 편이고 조용해서 좋다고 말씀을 해 주셔서 결국은 이곳에 정착을 했고, 지금까지 지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 지역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었지만, 집을 구할 때 저는 세 가지를 고려했답니다. 도서관과 교회 그리고 운동시설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이렇게 살 집을 정하고 가까운 외국인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 가졌던 생각이 이곳 사람들은 정말로 참 친절하구나, 오히려 내가 그들의 친절을 받을 준비가 안되어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때 교회의 지인께서 제가 한국에서 전산관련 분야에서 일을 했던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IMB에 이력서를 제출해 보라고 권유를 하더군요. 곧바로 저는 이력서를 제출했고, 인터뷰를 거쳐서 드디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한국에서 원래 늘 해왔던 일을.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리는 정규직이 아니라, 육아휴직으로 인해 비어있는 자리를 대신하는 7개월간의 Temporary Full-Time Job 이었습니다.

실수, 실수, 실수 투성이

취업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영어가 안되니 매일매일이 실수, 실수, 또 실수였습니다. Customer와도 문제가 생기고, 동료들과도 문제가 생겼는데, 한국 남자의 고질병인 ‘욱’ 을 참지 못해서 동료들과 다투기도 여러 번 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영어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말이 짧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오해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감사하게 저를 처음에 추천해 주셨던 분이 저를 그 7개월 동안 대변해주고, 조언해주고, 감싸주셨는데 그 분께서는 7개월을 제가 버텨야 근무가 종료된 후 5~6개월 동안 EI 라고 하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답니다. 근무 7개월이 되었을 때 Lay-off 통보를 받았는데 통보 당일로 Lay-off를 하고 2주간의 Pre-notice 기간 동안 일은 하지 않은 채 급여만 지급을 하더군요.
요즘말로 멘.붕! 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너무 큰 충격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고, 그때 저를 추천해 주셨다는 이유로 저 못지않게 마음 고생 하셨을 그분이 너무 감사하고 또 너무 죄송합니다.

첫 직장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저를 데리고 교회 친구가 Service Canada라는 곳엘 데려가 상담도 받게 해 주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것도 도와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이 많죠.

그때 상담사가 제게 무얼하고 싶냐고 묻길래 공부가 하고 싶다고 대답을 했는데 며칠 후 정말 예기치 못했던 제안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2년 동안 $15,000을 차등지급 할 것이다.”  라는..
이런 식의 지원은 마지막이니 열심히 공부해 보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행복한 공부..험난한 취업의 문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저는 곧바로 우선 Red River College의 3개월짜리 Academic English 과정에 등록을 했답니다. 어학 과정을 마치고 나서 2년짜리 Computer Engineering Technology 과정에 등록을 했는데, 이때 제 나이가 마흔 다섯, 아이들이 고등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네요. 제가 공부하는 동안 아내가 식당에서 kitchen helper로 일을 한 것이 참 많이 미안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가 제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제대로 할 기회를 캐나다에 와서 갖게 될 줄 생각도 못했고, 정부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학 중에 정부기관에서 Co-op도 마치고, 신나게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Honorable student로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 1월 학교를 졸업하고 Ice Cream 도매를 하는 작은 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급여가 많지 않아서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결국 9월에 자의반 타의반 Lay-off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열다섯곳 이상 면접을 봤지만 취업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았고 5개월 정도 실업상태로 있다보니 다시 통장에 잔고가 4000불 밖에 남지 않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Trucker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실습까지 마쳐가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Trucker로 일을 시작하는 날까지 다른 일을 주지 않으시면 이것에 하나님께서 주신 제 길 인줄 알고 가겠습니다.” 라고.

감사한 나의 직업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Trucker로 일을 시작하기 며칠 전 이력서를 제출했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간과를 했는데, 그곳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제가 공부한 것과도 딱 맞고, 과거 한국에서 했던 업무와도 잘 맞는 포지션으로 덜컥 합격을 했답니다.
그렇게 합격을 한 회사가 바로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이고 2007년 5월부터 지금까지 7년이 넘게 이 회사에서 저는 Computer Database Analyst로 근무중입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급여는 시간당 21불이었고, 지금은 시간당 33불의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가끔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면 나이가 취업을 하고 고용이 유지되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를 궁금해 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평균연령이 48세 or higher 이니까요. 특히 전문기술직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봐도 대부분 Long-run 하는 분위기입니다.

굳이 캐나다로 유학을 올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40대 이하는 누구나, 언제나 할수 있지만 40대 이상이라면 가능하기도 혹은 불가능하기도 하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 제가 말씀드리는 가능 혹은 불가능을 결정짓는 것이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로 하고 싶다면 Try를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있는 마니토바주 위니펙은 물가지수, 고용률/실업률, 주택가격 등이 전반적으로 큰 변화없이 안정적인 편이고, 북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북미 전역을 커버하는 각 기업들의 콜센터가 많이 있는 곳입니다.
Red River College는 오래된 역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커리큘럼들도 아주 실용적이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려는 분들에게는 추천해 드리기에 손색이 없는 학교입니다.

캐나다에서 생활한지 꼭 12년이 되었는데, 감사한 일들도 또 감사한 분들도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의 직업에도 만족과 감사함을 느끼고 있답니다.

마치며..

인터뷰를 하는 내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답니다. 많은 일을 겪으셨고 또 강산이 한번 바뀔 수 있을 만큼 캐나다에서 생활하신 지가 오래되셔서 인지 굉장히 담담하고 조용하게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네요.
하루 일과를 마치시고 저희에게 그렇게 늦은 밤에 긴 시간을 내주신 ***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자리를 빌어 며칠간 저희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시고, 댁에서 인터뷰까지 허락해 주신 홈스테이 가정 사장님 & 사모님께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저희도 여러 고객님들과 학교 미팅을 위해 이번 출장을 다니면서 정말 고마운 분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인터뷰에서 해주셨던 수많은 좋은 말씀들 가운데 유난히 ....사람들은 늘 친절한데 내가 그 친절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것이더라…라던 말씀이 가장 가슴에 남았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캐나다 방문에서 뵈었던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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